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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칼럼

[사회적기업] 무료로 수술하면서 돈도 버는 인도의 아라빈드 안과병원


이런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당신은 인도의 공공 병원에서 안과 의사로 몇 십 년간 일해 왔습니다.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계속 걸립니다. 인도에서 1,200만 명의 인구가 시력을 잃은 채 살고 있으며, 그 실명의 원인 중 80%는 간단한 수술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백내장 때문이라는 ‘불편한 진실’ 때문이지요.
 
이들은 수술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장님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빛을 되돌려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라빈드 안과 병원의 이야기는 설립자 닥터 고빈다파 벤카다스와미(Dr. Govindappa Venkataswamy)의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됩니다.
 
 

돈이 있는 환자는 유료, 돈이 없는 환자는 무료

 
 
닥터 브이(인도에서 닥터 고빈다파를 부르는 애칭)는 58세 은퇴 후, 여동생 의사 부부를 설득해서 1976년 인도 마두라이 마을에 11대 침상을 갖춘 병원을 엽니다. 6대는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해, 그리고 5대는 수술비를 지불할 수 있는 환자를 위해 마련했는데요. 수술비를 낼 여력이 되는 환자들에게 받은 돈으로 가난한 환자들까지 치료하겠다는 ‘아라빈드 모델’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라빈드 안과 병원 설립자

아라빈드 병원의 설립자 닥터 브이 (이미지 출처: www.aravind.org)

 
 
무료로 수술을 제공하기 위해서 아라빈드 병원은 비용을 현격하게 줄여야 했습니다. 이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데, 닥터 브이에게 영감을 제공한 것은 그가 미국 여행 중 관찰한 맥도날드였습니다. 세계 어느 맥도날드 매장에서든, 거의 동일한 맛의 햄버거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죠. 닥터 브이는 생각합니다.

햄버거를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어디에서나 사 먹을 수 있는데, 백내장 수술 역시 똑같이 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맥도날드식 제조 방식을 병원에 도입

 
 
인도로 돌아온 그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많은 이들에게 백내장 수술을 제공할 수 있는 방식을 조직 내에 설계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표준화된 아라빈드의 수술 절차인데요. 아라빈드 수술실에는 2개의 수술용 침대가 놓여 있습니다. 한 쪽 침대에서 수술을 하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환자가 대기하고 있죠. 수술이 끝나면 의사는 바로 뒤돌아 대기하고 있던 환자의 수술을 즉각적으로 시작하고, 그 동안 이전 테이블에서는 새로운 환자가 수술 준비를 합니다. 의료 기술, 인력, 공간 등을 최적으로 조합하여 수술을 하는 것이죠.
 
또한 그는 원활한 인력 수급을 위해 아예 의료 전문가 양성 과정을 아라빈드 내에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인건비 등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병원의 규모를 인도 전역으로 키웠죠.
 
아라빈드 안과병원

인도 마두라이에 위치한 아라빈드 병원 전경 (출처: www.aravind.org)

 
 
이러한 혁신으로 아라빈드 병원에서 의사가 개별적으로 1년간 시행하는 백내장 수술은 평균 2,000 건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인도 안과 의사는 300건, 미국에서는 125건) 설립 이후 현재까지 아라빈드는 3,200만 환자들을 진료, 400만 건이 넘는 수술을 실행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2009년 5월 ~ 2010년 4월 기간에 기준 미화 2,9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1,300만 달러 경상이익(45%)을 남기는데요. 이러한 이익은 다시 아라빈드 모델을 확장하는데 재투자됐습니다.
 
아라빈드 병원 환자별 외래 진료와 수술 분포

2012-2013년 한 해 아라빈드 병원 환자별 외래 진료와 수술 분포 (출처: 아라빈드 2012-2013 연차보고서)

 
 
현재 인도에는 의료시설에 접근이 어려운 낙후 지역의 환자들을 발굴해 수술까지 진행할 수 있는 Screening Camp 및 Eye Care Center가 1,800개 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백내장 수술과 특별 진료를 전담하는 5곳의 병원, 교육과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교육시설 등 다양한 아라빈드 전문 기관도 인도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2012-2013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외래 진료 환자 중 55%가 진료비를 지불하였고 45%는 무료로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수술의 경우는 무료의 비율이 더 커집니다. 37만 건이 넘는 수술을 실행하였는데 그 중 절반의 환자가 무료로 수술을 받았으며, 특히 백내장 수술은 65%의 환자가 무상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라빈드의 성공을 수치로만 봐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는 의문점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궁금한 점을 아라빈드에 물어보았습니다!
 
 

“아라빈드에 묻는다”

 
Q. 무상 진료를 받는 환자와 유료 환자는 어떻게 구분하나요?
A. 저희는 어떠한 서류도 요청하지 않습니다. 환자들에게 아라빈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설명하고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하고 병원은 이러한 선택을 신뢰합니다. 만약 백만장자가 공짜로 수술을 받으려고 한다면 우리 병원에서는 가능하죠. 환자들을 다른 병동으로 구분하여 합리적인 수준에서 유료 환자들에게 독자적인 병실, 에어컨 등 부가적인 편의는 제공하고 있지만, 두 곳에 모두 같은 의료진을 교대로 투입하여 돈을 내든 안 내든 동일한 수준의 진료와 수술을 받습니다.
 
Q. 아라빈드 의사들은 다른 병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술을 하는데 의료 사고가 많이 일어나지는 않나요?
A. 간단히 수치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라빈드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 중 합병증을 앓는 비율은 영국의 절반 수준입니다.
 
Q.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꾸준히 이러한 업무량을 소화할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A. 우리 병원의 의사들은 확실히 낮은 수준의 급여를 받고 일합니다. 환자를 더 많이 돌본다고 인센티브를 제공하지도 않고 상여금 같은 제도도 없어요. 대신 그들 중 90%는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는 의과 대학이 아니라 아라빈드에서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여 의사가 됩니다.
 
그래서 다른 의사들과 비교해 부채도 훨씬 적게 지고 있죠. 또 우리는 매주 의료진들이 모여 자기가 맡고 있는 환자 케이스와 처방, 그리고 성과를 보고하도록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이 일어나고 건강한 자극도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의료 과정을 통해서 직업적인 자부심, 사회적 사명감을 지속적으로 내재화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지요.
 
Q. 아직 인도 시골 지역에서는 간단한 수술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병원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텐데요. 이들을 위해 특별히 하고 있는 활동이 있나요?
A. 우리는 의료 시장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 위해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Screening Eye Camp 라는 프로그램으로 직접 시골 지역에 찾아가 시력 검사를 하고 간단한 처방을 내리고, 수술이 필요한 이들을 병원으로 불렀죠.
 
하지만 병원으로 오기까지 시간적, 심리적, 거리적 부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병원에 올 수 있는 무료 교통편과 숙박시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자 수술을 받으러 오는 환자 수가 5%에서 75%로 즉각적으로 증가하였죠.
 

이 인터뷰는 Stanford Center for Social Innovation 팟캐스트에서 2008년에 Lions Aravind Institute 의 Executive Director Thulasiraj Ravilla와 나눈 인터뷰 “Aravind: A model for sustainability”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위기를 혁신으로 돌파한 오로랩

 
 
아라빈드가 위기 없이 성공가도 만을 달린 것은 아닙니다. 백내장 수술을 하려면 인공수정체가 필요한데 80년대 까지만 해도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시장을 나누어 갖고 있었기에 이를 고가에 구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더 이상 환자들에게 무료로 수술을 제공하기 어려워지는 위기를 피할 수 없었죠.
 
아라빈드가 찾은 방법은 바로 인공수정체를 직접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병원의 파트너로 일하던 데이비드 그린은 안과의사, 은퇴한 과학자들, 연구자들 불러모아 1992년, 인도에 ‘오로랩’을 세워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 시장의 가격보다 15~30배 저렴한 인공수정체를 만드는 쾌거를 거두게 됩니다. 덕분에 미국에서 1,700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수술을 아라빈드에서는10달러로 받을 수 있게 되죠. 현재 오로랩은 인공수정체 생산업체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규모를 자랑하며, 인공수정체뿐만 아니라 수술에 필요한 의료재료와 의료품을 세계 120여개 나라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아라빈드 안과병원 진료 장면

아라빈드 병원 진료 모습 (이미지 출처: Aravind activity report 2009-2010)

 
 

딜라이트 보청기, 아라빈드를 롤모델로 삼아 성공

 
 
아라빈드가 성공을 쫓아, 많은 의료 기관에서는 아라빈드 모델을 벤치마크하기 위해 인도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라빈드 병원 관계자는 “아라빈드 모델을 도입하려고 시도한 300 곳 중에서 20%만이 우리의 성공 비결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요”라고 잘라 말합니다. 그만큼 아라빈드의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조직에 이식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말인데요. 반갑게도 우리 나라에서 아라빈드 병원을 벤치마크하여 성공을 거둔 사회적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가난해서 듣지 못하는 이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기존 시장 가격의 35~50%에 해당하는 저가형 보청기를 생산하는데 성공한 사회적 기업(사회적 기업 시리즈 1회: “사회적 기업이란 무엇인가” ) 딜라이트 보청기인데요. 김정현 대표는 아라빈드가 그에게 미친 영향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딜라이트 보청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마음만 가지고 사회적 기업에 뛰어들 수는 없었어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도 지속가능한 비즈니스가 가능할까 의심도 들었는데, 아라빈드 사례를 접하면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딜라이트를 창업하는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성공 = 공감(Empathy) x 혁신(Innovation)

 
 
아라빈드 병원 성공의 중심에는 사회를 향한 따뜻한 마음과 혁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살리는 병원을 만들겠다는 닥터 브이의 열정과 그 가치를 병원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 그리고 그가 그리는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적 조직적 혁신 이 두 요소가 만났을 때 비로소 아라빈드가 만들어 낸 ‘기적’이 가능한 것이죠.
 
이것이 바로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은 고인이 된 닥터 브이가 전하고 싶었던 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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